[일반알현 전문] 2017년 5월 10일: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그리스도인의 희망

                                              21. 희망의 어머니

[성경 말씀] 요한 19, 25-27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교리]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리스도인 희망에 대한 우리 교리 교육의 여정 중에, 오늘은 희망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마리아께서는 어머니로서의 여정 안에서 많은 밤을 보내셨습니다. 복음서의 역사 안에서 처음으로 등장 했을 때부터, 그분의 모습은 비극적인 인물인 것처럼 드러나 보입니다. 천사의 말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채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마리아는, 태어날 새 인간의 역사를 자신의 태중에 받아들이는 극단의 순간까지 용기 있는, 우리 세상의 많은 어머니 중의 한 명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그 “예”는 자신의, 어머니로서의 여정을 함께 하게 될 순종의 기나긴 명부의 첫 걸음입니다. 이처럼 성모 마리아는, 복음서 안에서,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주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 안에 모든 말씀과 사건을 간직하는 침묵의 여인으로 나타납니다.

이 성향 안에 심리학적으로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의 한 단편이 있습니다. 그녀는 삶의 불확실성 앞에, 특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 것 같을 때에도 실망에 빠지는 여인이 아닙니다. 더더욱, 자주 적대적인 얼굴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는 삶의 운명을 화내며, 폭력적으로 반항하는 여인이 아닙니다. 그 대신 경청하는 여인입니다. 희망과 경청 사이에는 항상 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모 마리아는 경청하는 여인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자신의 행복한 날들과 우리가 만나기를 꺼려하는 자신의 비참한 일들 안에서 실존을 맞아들이고 우리에게 주십니다. 십자 나무에 자신의 아드님이 못박히는 마리아의 극적인 밤에 이르기 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그 날까지 마리아는 복음서들의 줄거리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거룩한 성경 사가들은, 그분 존재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과 아버지께 순종하는 아드님의 신비 앞에 침묵 중에 계시는 그분을 이해하게끔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사라지는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다시 나타나십니다. 십자가의 아래에 있는 그 순간 어머니는 배반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 죽은 무죄한 아들과 당신 아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는 어머니의 비통함 중에 어떤 것이 더 잔혹하게 고통스러운 것인지 우리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동사가 그 어머니의 존재를 기록했습니다. 그녀는 “있었다”(요한 19,25). 그분은 거기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녀의 반응에 대해서, 그녀가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부 사항들에 대해서 문학이나 예술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작품들을 선물하면서 시인들이나 화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은 단지 그녀는 “있었다”고만 말합니다. 더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에 그곳에 있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고통을 겪었습니다.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냥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젠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머리카락이 희뜩 희뜩해진 나자렛의 젊은 여인은 새롭게 그곳에 있습니다. 오로지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과 함께, 더 짙은 어둠의 문턱에 도착한 삶과 함께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마리아는 더 짙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곳에 있습니다. 충실하게 있습니다. 안개가 있는 곳에 촛불을 밝혀 두어야 할 때마다 그곳에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 아들이 우리 모든 인간을 위해서 열고 있는 그 순간, 부활의 운명도 모르는 채, 당신이 부르심 받던 첫 날 자신을 복되다고 불렀던 하느님의 계획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리고 고통을 당하는 아들이 있을 때마다 단지 고통을 느끼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적인 이유에 의해서 그곳에 있습니다. 어머니들의 고통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녀들의 많은 고통에 동참한 강한 여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한명은 배반했고, 많은 제자들이 도망쳤으며,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깨지기 쉬웠던 제자들의 공동체(사도 1,14 참조) 안에 계시는 희망의 어머니이신 그녀를 우리는 교회의 시작점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최대한 평범한 모습으로 단순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부활의 빛으로 감싸여 있지만, 동시에 세상 안으로 내딛어야 하는 첫 발걸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감싸인 첫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 모두는 그분을 어머니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고아들입니다. 하늘에 어머니를 한 분 모시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일 때도 우리에게 기다림의 덕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의 잘못 때문에 자신을 감추어 버린 것 같을 때도, 그녀는 항상 하느님의 신비를 신뢰하십니다. 어려움의 순간들에도,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하신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지탱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향해서 “일어나라! 앞을 보고 지평선을 보아라”라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희망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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